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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도 삼국시대 이후 조선 후기까지 횃불, 봉화, 꽹과리, 깃발 등을 이용하여 선박 항해의 지표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 항로표지가 최초로 나타난 문헌인 세종실록(1422년)에 의하면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 앞 해상 광장목에 지방수령이 향도선을 배치하여 세곡 선박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근대식 등대가 도입된 계기는 19세기 말 서구열강과 일본이 식민지 획득을 위해 동양으로 진출할 무렵 우리나라는 일본과 병자수호조약(1876년)을 체결하게 된다. 일본과 수교 후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과도 수교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각 국의 상선과 군함이 들어오면서 이들이 항만시설과 더불어 항로표지시설의 설치를 우리 정부에 수차례 요구하게 되었다. 특히 일본은 1883년 영국과의 수호조약 후 통상장정을 맺게 된 것과 같은 수법으로 1883년 7월 25일 우리 정부에 체결을 요구한「조일통상장정」에「조선정부는 통상 각항을 수리하고 등대 초표 시설을 설치한다」라는 의무를 명시하고 있었던 바, 청나라와의 전쟁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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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에 정부 관제가 4부 8아문으로 개편되면서『해운 및 항로표지에 관한 사무』를「공무아문 관선과」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일본은 1895년 6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우리나라 연안 30개소에 항로표지 설치를 위한 위치조사와 사업계획서를 수립하고 제출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1902년 3월 26일 미국 외 7개국에 외교문서로 고시하였으며 1902년 5월 인천항 팔미도·소월미도 등대와 북장자서·백암등표 설치공사를 착수하여 1903년 6월 1일 팔미도등대·소월미도등대·북장자서등표·백암등표를 신설 점등하였으니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식 항로표지의 효시이다. 그 후 인천항의 부도등대, 여수항의 거문도 등대, 울산항의 울기등대, 제주항의 우도등대, 여수항의 거문도 등대, 목포항의 칠발도 등대 등을 신설 점등하여 일제강점기(1910.8) 전까지 유인등대 20기와 무인표지 153기를 설치·운영하였다.

일제강점기 후에는 전국 연안의 항로표지가 증가되고 장비의 발달로 석유등에서 아세틸렌가스등을 도입하여 운영하였다. 일본이 대륙 진출을 위한 해상물자 수송의 필요에 따라 항로표지시설의 확장에 중점을 두었으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항로표지시설을 군사시설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항로표지가 국제적 공기로서 인정되고 있었음에도 파괴가 불가피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이후에도 철수하는 일본인에 의해서도 항로표지의 상당수가 파괴되어 전국에 기존 설치된 항로표지 중 사용가능한 시설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측은 일본 정부에 대해 한국해안의 항로표지를 8.15이전으로 원상복구를 명하였으나 인천 근해에 미군함정이 겨우 출입할 정도로 가등(假燈)을 설치하고 일본인 등대원을 재배치하였을 따름이었다. 마침내 1945년 12월 26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항로표지 업무를 인계받음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손으로 항로표지의 사명을 짊어지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미군정이 시작 되면서 항로표지 용품이 도난되는 등 사회적 혼란을 겪게 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1946년 6월 15일 해안경비대가 창설되어 국방상 항로표지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1947년 2월 1일 항로표지 업무가 해안경비대로 이관되어 한때 해군에서 관장하였다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더불어 항로표지 업무는 그 해 11월 4일 대통령령 제26호에 의거 교통부 해운국으로 재 이관되어 우리 정부의 투자에 의해 기존에 파괴된 항로표지 복구사업이 추진된다. 일체의 표지시설을 인수받은 교통부는 곧 6개소에 전등 시설, 2개소에 무신호, 4개소에 등표, 10건의 등대원 관사 및 10척의 보급선 등의 복구공사에 착수하는 동시에 기술자의 단기양성과 당시 보유하고 있던 시설유지에 철저를 기하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6.25 동란 으로 대부분의 항로표지가 파괴되어 기존 항로표지 복구공사는 수포로 돌아갔다. 항로표지의 기능은 전쟁으로 인한 재앙뿐 아니라 광원장치에 필요한 항로표지 용품의 구입과 기술자의 부족 등으로 광달거리가 오히려 8.15 이전보다도 약화되었다. 이에 교통부는 1953년부터 1960년까지 네 차례의 복구계획을 수립하고 기술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 무렵 대형 등명기와 전원 복구에 중점을 두었으며, 13개소의 유인등대에 발전시설이 갖추어지고, 29개소의 유인등대에 광원이 석유 백열등에서 전기등으로 전환되었다.

1961년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고 선박의 증가와 더불어 항로표지시설의 증설 및 개량에도 역점을 두어 수행한 결과 1960년에 항로표지기수가 254기에서 1969년 418기로 증설되었다. 항로표지 기지창의 설치는 1961년 10월 2일에 교통부 소속으로 독립적인 명칭이 최초로 불려지게 되었으며, 1962년1월 6일 교통부 장관 직속으로 독자적인 항로표지시설을 위한 각종 표지 기기를 제작하게 되었다. 장비의 개량 및 장비가 전자화됨에 따라 항로표지시설도 전자기기로 점차 변모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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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첨단과학이 발달됨에 따라 광원이 전기식 등명기로 교체되고, 1976년 3월 13일 해운항만청이 발족되면서 항로표지시설의 개량에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1988년 송신국에서 전파를 발사하여 자신의 위치를 측정할 수 있는 장거리 무선항법시스템인 로란-C가 도입되었다. 1992년 등명기, 무신호, 전원 공급장치 등 등대에 설치된 항로표지시설의 동작상태를 컴퓨터로 원격조정 및 감시하기 위한 현대화된 자동원격감시·제어장치가 격렬비도등대에 처음 도입된 이후 낙도 오지의 유인등대를 무인원격으로 조정하는 곳이 늘어났다. 1996년 8월 8일 해양수산부가 발족되어 항로표지를 관리하면서 선진 항로표지 국가로 발전하는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정밀한 위치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위성항법보정시스템(DGPS)이 1999년 8월에 도입되어 서해안 팔미도등대를 시작으로 2002년 10월 동·남해안 주요 등대 11개소에 설치 운영하고 있다. 또한 2000년 10월 25일에 항로표지 측정선이 건조되어 항로표지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정보수집 및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항만 외 연안에서 항행안전과 연관된 항로표지 관리·운영 등 해양교통정보가 필요한 이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항로표지 집약관리시스템, 조류가 강한 해역의 조류정보를 실시간으로 항해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조류신호소, 국지적인 해양의 기상과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기상 신호 표지를 IT기술에 접목한 항로표지 종합관리 정보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해상교통안전시설의 통합관리 및 통항 선박에 대한 동정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감시함으로써 해난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해양종사자들의 재산과 인명보호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 해상물동량의 증가와 선박의 대형화, 쾌속화 등으로 해상교통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해난사고 예방과 선박의 안전운항에 기여할 최첨단장비를 갖춘 항로표지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다. 또한,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는 등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해양 친수문화공간의 전진기지로 활용하고 있으며 일반인에게 해양사상을 고취시키고 등대의 해양문화체험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2000년부터 전국 주요 유인등대 3개소에 개방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 변천으로 인해 사라져 가는 항로표지 용품들을 영구히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고, 해상교통안전의 중요성과 바다사랑 정신을 함양시키고자 1985년 2월 7일 경북 포항 호미곶에 우리나라 유일의 등대박물관을 개관하였다. 등대 100년의 역사를 맞이하면서 유물 전시를 통한 해양문화체험, 항로표지 역사 보존과 발전 연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1996년부터 제2전시관과 부대시설 및 전시물 보완을 위한 확충사업을 추진하고 2002년 4월 19일 등대박물관을 재 개관하게 되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 위에 한줄기 빛으로 뱃길을 열어주는 등대가 우리 바다에 처음 불을 밝힌 지 약 100년이 되었다. 그동안 항로표지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21세기는 신 해양시대로서 지속적인 항로표지의 발전과 바다를 통하여 더 부강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일은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소중한 특권이자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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